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는 프랑스 출신이다.
그는 라 플레슈(La Flèche) 에수회 학교에서 스콜라철학을 공부하였는데, 이러한 학문적 배경은 그의 철학에 영향을 미쳤다(신 존재 증명 등).
다만 데카르트는 학문의 확고한 기초에 대해서 회의적이었으며, 이것이 그를 방랑길로 이끈다.
23세의 나이에 30년전쟁에 참전하기도 한 데카르트는, 이후 네덜란드에서 안정된 생활을 누리며 학문 연구에 전념한다.
하지만 그는 1649년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의 초청으로 스톡홀름으로 이주하게 되는데, 스웨덴의 험한 기후와 여러 요인들이 겹쳐 1650년에 최후를 맞이한다.
데카르트의 대표적인 저작은 다음과 같다.
「방법서설(Discours de la méthode, 1637)」, 「성찰(Méditations de prima philosophia, 1641)」, 「철학의 원리(Principia philosophiae, 1644)」, 「정신 지도를 위한 규칙들(Regulae ad directionem ingenii, 1626~1628)」.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 초반까지는, 로마가톨릭교회와 프로테스탄트 간의 갈등이 심화되었던 시기이다.
두 교리 간의 주요 분쟁 사안들 중 하나는 기독교 진리의 판단 기준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가톨릭교회는 성서와 전통을 진리판단의 기준으로 삼았다.
이들은 교회 권력을 대표하는 교황의 권위를 중시하였으며, 견진, 고백, 선찬 등을 포함한 성사가 신앙의 은혜를 받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생각하였다.
반면 프로테스탄트들은 오로지 성서만을(솔라 스크립투라, Sola Scriptura) 기준으로 내세웠다.
성서의 가르침이 그들의 양심에 알려주는 바가 바로 진리라는 것이다.
가톨릭교도들은 이에 대해, 각 개인의 양심이 진리 판단의 기준으로 작용한다면 기독교 교리는 무한히 많아질 것이라고 반박하였다.
가톨릭교회와 프로테스탄티즘의 이러한 갈등은, 진리 판단의 기준이 무엇인가 하는 철학의 근본적인 물음을 다시금 부각시켰으며, 데카르트 또한 여기에 영향을 받았다.
대다수 가톨릭교도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회의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어느 쪽이 옳다고 판단하기도 쉽지 않았으며, 그렇다고 이들이 지금껏 쌓아온 신앙에 반하는 논증을 수립하기도 어려웠다.
이제 데카르트에 대한 얘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데카르트가 생각하기에, 지금까지의 철학은 끊임없는 논란의 연속이었다.
확실한 것은 연역적, 수학적 방법 뿐이었으며, 데카르트는 연역체계를 일종의 이상으로 삼고 철학이 기하학과 같은 확고한 학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였다.
이때 중요한 것은 절대적으로 확실하면서도 참된 전제(공리)들이다.
그 이유는 연역법의 특징에서 찾을 수 있을 테다.
연역논증이란 전제가 참이라고 가정했을 떄 결론이 거짓일 수 없는 논증을 의미한다.
따라서 전제를 확신할 수 없다면 결론도 무가치하다.
이어서 데카르트는 그의 '방법적 회의(懷疑)'를 개진한다.
데카르트는 방법적 회의를 통해서 논리적으로 의심할 수 없는 전제들을 찾고자 한다.
"그래서 방법적 회의의 목적은 이성적으로 정당하게 의심할 수 있는 것 혹은 그럴 수 없는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의심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다.(p.415)"
이때, 질문을 던지는 주체는 여러 명이 아니라 생각하는 개인이다.
그의 질문을 재구성해보면 다음과 같은데, 너무 깊게 파고들지는 않을 것이다.
1. 철학적 전통에 대해서, 지금까지 철학자들의 주장을 회의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들은 모두 다른 주장을 해왔으며, 서로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떠한 철학적 전통은 연역적 철학 체계를 위한 전제로 부적합하다.
2. 우리의 감각에 대해서, 이것을 의심하는 것 역시 가능하다.
예를 들어서, 분명 흰색 혹은 검은색인것 같았던 타일의 색깔이 나중에 보니 회색임이 밝혀질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동일한 사물 혹은 현상에 대해서 상충하는 감각 인상을 가질 수 있다.
일상 생활에서, 우리는 대개 어느 한 감각 인상을 더욱 신뢰한다. 예를 들어서, 어떤 대상을 멀리서 본 모습과 가까이서 본 모습이 다르다면 우리는 통상 가까이서 본 모습을 더 신뢰한다.
또한,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 우리가 저것을 제대로 본 것이 맞는지 물어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감각기관 역시도 우리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기에, 그들의 진술이 틀릴 가능성이 존재한다.
말하자면 우리는 하나의 감각 인상이 옳은지 판단하기 위해서 다른 여러 감각 인상들을 동원할 수 밖에 없는데, 원칙적으로 모두가 틀릴 수 있다.
따라서 감각 인상은 연역적 철학 체계를 위한 전제로 부적합하다.
3. 원칙적으로 확실하게 보이는 감각 인상들에 대해서, 데카르트에게는 이것 또한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지, 진정 깨어있는지 판단할 타당한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내용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깨어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우리가 깨어있다고 여기는 우리의 생각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깨어있다고 생각하는 꿈을 꾸고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4, 논리학에 관하여,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는 하나의 논증이 타당한지 검증하는 수단으로 다른 논증 외에는 가진 것이 없다.
하나의 논증이 오류일 가능성이 있다면, 두 번째와 세 번째 논증도 오류일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다만, 데카르트 자신도 이런 논증을 가지고 여러 논증들이 오류일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는 점은, 앞선 감각 인상에 대한 회의와는 조금 다른 점이다.
여기에 데카르트는 사유실험 하나를 추가한다.
강력한 악마가 우리를 끊임없이 속이고 있다고 가정해보는 것이다.
즉, 악마 때문에 우리는 어떤 것이 틀렸음에도 그것이 틀렸다는 사실을 모르며, 악마는 때때로 그릇된 의견이나 인상을 심어주기도 한다.
이 악마 사유실험이 사실이 아님을 보여줄 수 있는, 우리가 의심할 수 없는 앎이 존재할까?
데카르트는 지금 무언가를 의심하는 자기 자신은 결코 의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아무리 모든 것을 의심한다고 하더라도 그는 자신이 의심한다는 사실을 의심할 수 없다는 것, 즉 자신이 존재하며 스스로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의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p.419)".
하물며 악마는 데카르트가 실제로 존재해야 자신을 믿게끔 하거나 데카르트를 속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
위 표현은 「방법서설」에서 데카르트가 사용한 문장이며, 이후 그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성찰」에서 "나는 있다, 존재한다"라는 문장을 새로 사용한다.
왜냐하면, 그는 "고로"라는 단어가 전제와 결론을 암시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철학의 제1명제, 즉 '코기토(the cogito)'는 논리적 추론이 아니라, 거부할 수 없는 성찰적 통찰이다.
한편, 우리가 어떤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수 없다면, 그것은 명석한 것이다.
우리가 어떤 것을 다른 무언가와 혼동할 수 없다면, 그것은 판명한 것이다.
이것은 의심하는(생각하는) 동시에 존재하는 데카르트 안에서 명석판명하게 떠오르는 통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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