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홉스는 잉글랜드인이며, 어려서부터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배웠다.
홉스가 54세였던 1642년은 영국 시민전쟁(혹은 영국 내전, 1642~1651 CE)이 일어난 해였는데, 시민전쟁 초기에 홉스는 파리로 피신했다가 1652년에 영국으로 돌아온다.
그의 이론은 혼란했던 당시 시대상에서 큰 영향을 받았으며, 여기서 사회의 평화와 질서를 수호할 수 있는 절대왕정의 필요성을 엿볼 수 있다.
대표적인 홉스의 저서는 다음과 같다. 「리바이어던(Leviathan, or the Matter, Form and Power of a Commenwealth Ecclesiastical and Civil)」, 「시민론(De cive)」, 「물체론(De corpore)」.
홉스의 정치 이론은 대단히 개인주의적이면서 동시에 대단히 절대주의적인 특징을 갖는다고 해석할 수 있다.
유대감 없이 개인화된 사람들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강력한 외부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홉스는 마키아밸리와 같이 인간 본성이 변화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다만 그는 마키아밸리의 방법에서 조금 더 나아가, 진행중인 사회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토대를 찾고자 노력하였다.
이러한 측면에서 홉스를 합리주의적 형이상학자로 해석하는 것도 가능한데, 홉스는 수브-옉툼으로서의 인간을 토대로 사회를 설명한다.
홉스는 그의 저서 <시민론>에서 시계의 예를 사용하여 사회를 설명한다.
괘종시계를 떠올려보자.
만약 우리가 시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고 싶다면, 그것을 분해한다.
그리고 시계를 구성하는 여러 부품들과 그것의 속성을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분해의 역순으로 부품들을 조립할텐데, 그럼으로써 시계의 작동원리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시계추는 시게를 움직이게 하며, 진자는 시계가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도록 통제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어떤 부분은 매커니즘을 구동하고, 어떤 부분은 매커니즘을 통제한다.
홉스에 따르면 사회도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회를 그것의 구성 부분들로 나눈 뒤 다시 합쳐보면, 각 부분들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으며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분석과 종합의 방법이다.
하지만 홉스는 환원주의적 관점을 취하는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모든 부품(부분)이 합쳐진 시계(사회)는 단순한 완성품을 넘어서 질적으로 새로운 무언가가 된다.
따라서 홉스는 "전체는 오직 그 부분들과 그것들의 속성, 그리고 그것들의 기능적 통일성에 의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고 말한다.(p.396)"
한편, 우리는 시계를 살펴볼 때 그것의 작동원리를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다.
개별 부품들의 속성은, 그 속성이 시계를 움직이는 데에 중요한 한에서만 유의미하다.
예를 들어서, 우리는 용수철이 팽팽한지, 톱니바퀴들은 그 크기에 따라서 서로 잘 맞물려 있는지 등에 관심을 갖는다.
용수철이 무슨 색인지, 톱니바퀴가 어떤 분자 구조로 이루어져있는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홉스에 따르면, 시계가 만들어진 목적 또한 부차적이다.
그것이 사치품이던, 생필품이던, 선물용이던간에 중요한 것은 시계의 부품들이 맞물려 작동하는 기능을 이해하는 것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부분들에 도달하기 위해서, 홉스는 사유실험을 개진한다.
그는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인간의 삶이 어떠할 것인지 질문한다.
홉스에 따르면, 인간은 '자연 상태'에 놓이게 될 것이며 한편으로 이것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이다.
국가가 없다면 우리 모두는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야만 한다.
생존에 필요한 재화는 한정적이며, 인간 대부분은 비슷한 수준의 완력과 지력을 갖고 있다.
이 개인적 생존 투쟁은 모두에게 공포를 선사하며, 여기서 안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런 마당에 나 혼자서 상황을 바꾸는건 불가능하다.
내 몸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기방어에 돌입해야 하며, 이는 곧 투쟁에 참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홉스는 사회의 기초적 구성원인 인간의 핵심 목적은 자기 보존이며, 자기 보존의 욕구로부터 공동체에 대한 유대감, 사회적 상호작용, 공감 등의 여러 사회적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기방어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모든 이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주는 권력을 수립하여 사회 질서를 수립하는 데에 모두가 동의한다면, 그것은 모두에게 희소식이 될 것이다.
하지만 개인들은 어떻게 여기에 도달할 수 있는가?
당장의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개인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전략은 계속해서 투쟁에 대비하는 것이다.
하지만 홉스에 따르면, 보다 성찰적이고 계몽적인 이성을 지닌 사람들은 사회 계약을 통해서 일종의 합의를 도출해낸다.
이 계약이 사회를 구성하는데, 이로서 사람들은 물리적 힘을 비롯한 자신의 자유를 하나의 기관에 맡겨서 통합된 권력을 만들어낸다.
핵심은 국가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물리적 힘을 지닌 기관인데, 이것이 왕인지 의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권력의 분배 등의 요인으로 인해 구심점을 잃어버린 기관은 통일성을 잃고 해체될 가능성이 있다.
이렇듯 국가의 창설은 개인들 간의 계약이며, 통치자는 절대적 주권을 갖게 된다.
하지만 홉스가 어떠한 제약도 없는 절대주의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군주가 사회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 개인들의 안전이 위협받게 된다면, 사회는 다시금 무질서의 상태로 되돌아가게 된다.
새로운 계약과 통치자가 탄생해야 하는 시기가 도래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하였지만 법질서를 강제하고 물리력을 행사하는 주체는 반드시 한 사람이 아닌 집단일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계약에 참여하는 개인들이며, 이기적인 개인들 간의 투쟁이 국가의 토대이다.
국가와 왕정은 개인의 자기 보존을 확보해주는 수단에 불과하다.
이것은 본성상 인간을 정치적(사회적) 존재라고 바라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다.
홉스에 따르면, 개인들은 비사회적이며, 사회는 상호 합의한 자기 이익에 기초한 계약을 통해서 만들어진 인위적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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