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사/근대

로크 [2]

bianor 2024. 2. 4. 21:59

로크는 제1성질(primary qualities)제2성질(secondary qualities)을 구분한다.
제1성질이란 연장, 형태, 경도와 같은 속성을 의미한다.
이것은 대체로 우리가 객관적이라고 여기는 것들이며, 수치화하기 용이하다.
제2성질이란 맛, 냄새, 색깔, 온기와 같은 속성을 의미한다.
이는 제1성질이 우리의 감각기관에 작용하여 산출된 것들이다.
(색깔과 같은 속성은 오늘날 RGB 등을 통해 객관적인 숫자로 표현할 수 있지만, 넘어가도록 하자)
따라서 이러한 감각질(sensory qualities)이 주체에 의존적이라는 것을 감각질의 주관성 이론이라고 한다.

이때, 우리는 색깔 없는 연장을 상상할 수 있는가?
제2성질과 더불어 길이, 연장과 같은 제1성질 또한 주체인 우리에 의존적인 속성이 아닐까?
인간과 독립적으로, 자연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속성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버클리와 흄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계승한다.
더 나아가, 로크가 감각기관을 통한 외적 지각으로서의 경험 또한 문제가 있다.
혹자는 우리가 저 꽃을 보는 것이 아니라고 반박할 수 있다.
우리는 그저 망막에 맺힌 꽃의 상을 보는 것이며, 코에서 느껴지는 꽃의 향을 맡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저기 저 꽃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확실히 알 수 없다.
이러한 입장은 표상적[재현적] 실재론(representative realism)이라고 불린다.



앞선 포스팅에서 무한에 대해서 살펴보았는데, 로크는 또한 실체 개념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일상생활에서, 대부분 단순관념은 홀로 다니지 않는다.
예를 들어서 우리는 둥글다, 잘 튄다, 먹을 수 없다 등의 속성들, 즉 단순관념들은 공이라는 복합관념을 구성한다.
그리고 이때 스스로는 아무런 속성을 가지지 않은 채 앞서 언급한 속성들의 기저에 놓여서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무언가를 실체라고 한다.
따라서 복합관념을 사용할 때, 우리는 단순히 지각 가능한 속성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개념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로크를 온건한 경험주의자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로크는 그의 정치철학에서 합리주의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흔히 로크-버클리-흄으로 이어지는 계보에서, 로크는 분명한 철학사적 업적을 남겼음에 틀림없다.
버클리와 흄의 사상에서 경험주의적 면모를 발견할 수 있음은 덤이다.


경험주의라는 개념은 비단 인식론에서만 쓰이는 것이 아니다.
경험주의는 실험과학과 경험과학을 지지하는 한편, 논리적으로 모호하고 실증적으로 검증하기 어려운 체계를 불신하는 관점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태도는 18세기 영국 지성계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이는 경험주의적 인식론과는 무관한 또 다른 경험주의이며, 이러한 맥락에서 로크는 철저한 경험주의자가 맞을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경험주의적 태도는, 비단 로크가 아닌 선대 철학자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 면모인 동시에 과학적 문명의 필수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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