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의 유명한 대학교들은 언제 처음 탄생했을까?
12세기 말엽이 되면, 고대의 교육체계에 근원을 둔 '대학'이 탄생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중세시대에는 대학의 개념이 대단히 불명확했으며, 오늘날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알아두어야 한다.
초기의 대학들은, 자유인이라면 반드시 배워야 할 소위 필수교양과목(artes liberales) 7개를 가지고 있었다.
7개 과목들은 두 개의 그룹으로 나뉘는데, 하나는 트리비움(trivium)으로서 문법학, 수사학과 논리학으로 구성된다.
이는 고대 정치가와 연설가에게 필수적인 과목들이다.
다른 하나는 콰드리비움(quadrivium)으로서 기하학, 산술학, 천문학과 음악으로 구성된다.
이는 플라톤과 피타고라스가 중요시했던 과목들이다.
이렇듯 중세 초기 대학은 고대의 교육체계를 기반으로 그 전통을 형성해나가기 사작했다.
중세 시대의 주요 학문적 문화중심지는 비잔티움, 라틴어권 수도원들, 그리고 아랍의 문화중심지들이다.
비잔티움은 동로마 제국을 포괄적으로 가리키는 용어인데, 이곳 사람들은 중세시대 동안 그리스어를 사용했다.
하지만 우리는 고대 학문을 보존했던 교회의 역할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교회와 수도원은 서로 다른 민족과 문화로 분열되었던 유럽에서, 유럽 공통의 문화를 보존하고 계승했다.
비록 기독교 신학과 성서가 우선시되었을지라도, 교회와 같이 나름의 시스템과 통일성을 가지고 고대의 학문을 보존한 기관은 사실상 유일무이했다.
한편으로 아랍 문화는 그리스어로 작성된 고대의 문헌을 번역하였다.
이 번역본들은 라틴어 사용이 만연하던 유럽이 과거의 사상들을 재발굴하는데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초기 대학은 교회와 대성당의 부설 교육시설에서 시작했으며, 이때는 샤를마뉴 대제의 통치기간이었다.
이 시기의 주요 학자들은 다음과 같다.
투르의 그레고리우스(Gregorius de Tours, 538~594 CE), 베다 베네라빌리스(Beda Venerabilis, 673~735 CE), 세비야의 이시도루스(Isidorus Hispalensis 560~636 CE).
우니베르시타스(universitas)는 학생과 교수의 길드를 의미하는 단어로 12세기 말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15세기가 되면 우니베르시타스가 근대적 의미의 대학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리잡는다.
초기 대학들은 모두 대도시에 위치해있었는데, 당시 폭발적이었던 교육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였다.
대학들은 특정 분야에 전문화된 모습을 보였다.
예를 들어서, 파리에서는 신학 연구가 중점적으로 이루어졌으며, 볼로냐는 법학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러한 전문화 경향은 학생들로 하여금 유랑을 하게끔 만들었다.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을 갖춘 인재는 지속적인 수요가 있었으며, 따라서 대학의 규모는 점차 커져갔다.
이에 대학은 각자가 학칙, 교육과정 및 학위 규정을 만들 수 있는 권한을 얻어냈으며, 외부의 간섭 없이 교육의 내용과 형식을 결정할 자율성을 취득했다.
13세기 대학의 학부는 크게 4개로, 각각 신학부, 법학부, 의학부와 교양학부(7개 과목)로 구성되었다.
학생들은 앞의 3개 학부 중 하나에서 공부하기 전에 반드시 교양공부를 진행해야 했다.
중세시대의 대학에서는 콰드라비움이 그렇게 큰 위상을 차지하지는 않았지만, 훌륭한 학자들은 언제나 존재하는 법이다.
자연과학 분야에서의 대표적인 학자는 다음과 같다.
로버트 그로스테스트(Robert Grosseteste, 1175~1253 CE), 로저 베이컨(Roger Bacon, 1215~1294), 니콜 오렘(Nicole Oresme, 1320~1382 CE).
대학에서는 토론활동이 조직적으로 이루어졌으며, 학생들은 서로 토론하며 논리적 논변 능력을 기를수 있었다.
강의(렉티오, lectio)와 더불어 논쟁시험(디스푸타티오, Disputatio)가 중세 교육에서 핵심적이었다.
대학에서, 학생들은 주로 고전 문헌과 텍스트를 공부했다.
예를 들어, 과거 볼로냐대학에서 행해진 의학부 4년 교육과정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1학년때는 이븐 시나와 그의 의학서적을 독해한다.
2학년부터 3학년까지는 갈레노스와 히포크라테스, 이븐 루시드를 공부한다.
4학년이 되면 지금까지 배운 내용을 복습한다.
의학부의 경우 인체를 해부하는 등의 실습 강의도 진행되었다.
한편, 중세의 대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오늘날과 비교했을 떄 꽤나 강력한 권력을 지니고 있었다.
예를 들어, 학생 조합은 학장을 선출하거나 해고할 수 있었다.
교수자가 수업을 제대로 진행하지 않거나 하면 학생이 직접 벌금을 부과할 수 있었다.
학생들이 어떤 수업을 거부한다면 교수자는 해고되었다.
이는 학생 대부분이 부유한 가문의 자제들로서, 교수자의 월급을 직접 주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중세 대학은, 주로 남성들의 무대였다.
여성들은 주로 병원과 수도원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맡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요즈음에는 힐데가르트 폰 빙엔(Hildegard von Bingen, 1098~1179 CE), 노리치의 줄리안(Julian of Norwich, 1340~? CE)등의 철학적, 신학적 업적이 부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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