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에 이르러, 로마가톨릭교회는 분열되고 말았다.
몰락은 교회 내부에서의 타락, 권력의 남용, 재정적 문제, 그리고 종교개혁 등 복합적인 원인에 의해 서서히 진행되었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우리에게 '95개조 반박문'으로 잘 알려진 신학자이다.
종교개혁가들은 단지 교회를 비판하고 번혁하는 데에 목적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들의 신학적 독창성은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 맞물려 교회에 상당한 타격을 입혔다.
개혁운동의 여파로 프로테스탄티즘이 탄생했는데, 마르틴 루터는 그 선구자격인 학자이다.

오직 신앙만이
루터에 따르면, 우리가 신앙에 관련하여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성서에 기록되어있다.
기독교인들은 그들이 무엇을 배우고 믿어야 할지 가르쳐줄 교부도, 공의회도, 교황도 필요하지 않다.
개개인은 전통과 교회의 중재 없이, 독립적으로 신과 마주해야 한다.
그것의 기반이 곧 신앙이며, 인간은 신의 은총을 받는 수동적인 존재이다.
또, 마르틴 루터는 성서를 해석함에 있어서 그것을 이성적 잣대로 재단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성서를 해석할 때에는, 비록 어떤 내용이 철학적으로 부조리한 것으로 여겨질지라도 종교적 진리로서 받아들여야만 한다.
루터의 신학은 주의주의적 면모를 띤다.
선과 악은 신에 의해서 규정되었는데, 그것은 신이 의지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신은 어떤 것이 선이어아만 해서 그것을 선이라고 의지한 것이 아니다.
신이 그것을 선이라고 의지하였기 때문에 그것이 선하고 옳은 것이다.
이처럼, 신은 어떠한 구속에도 놓이지 않는 절대적이고 존엄한 의지이다.
루터는 사람들을 지배하는 두 가지 체제를 이야기하는데, 두 지배체제는 모두 신에 의해 설립된 것이다.
하나는 세속적 지배체제인데, 이것은 국가로서, '칼'을 사용해 사회의 정의와 질서를 수호한다.
다른 하나는 영적 지배체제인데, 이것은 교회로서, '말'을 사용해 모두의 양심에 호소한다.
루터는 인간을 본래 포악하고 잔인한 동물이라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이들을 엄격히 규제하고 다스릴 법률과 형벌은 필수적이다.
국가에 대한 반란은 신에 반기를 드는 것이며, 국가가 휘두르는 칼은 신에 대한 봉사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루터는 꽤나 강력한 어조로 이를 옹호한다.
"농민들은 들으려 하지도 않고 누구의 말에도 귀 기울이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의 머리통이 박살이 나 몸통에서 떨어져 나갈 때까지 그들의 귀에 총을 쏘아 귓구멍을 뚫어야 한다. ... 좋은 말로 할 때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도끼를 들고 다가오는 망나니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리라." (M.Luther, "Ein Sendberief von dem harten Buechlein wider die Bauern(1525))
루터의 이런 무자비함은, 그가 독일어로 성서를 번역하고 종교개혁을 이끌었다는 밝은 면에 비해서 잘 알려지지 않은 면모이다.
한편, 세속적 지배 체제는 단지 사람들의 외면을 다스릴 수 있을 뿐이다.
이단의 씨앗이 자라는 내적 인격체는, 오로지 하느님의 말씀으로만 정화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내적 태도와 외적 행동간의 법철학적 구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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