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사/중세

토마스 아퀴나스 [2]

bianor 2023. 7. 24. 23:05

존재론

책에서는 아퀴나스의 철학을 존재의 철학이라고 단정짓고 있을 정도로, 존재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그 주요 개념들을 짚어보자.

 

존재와 존재자

존재와 존재자의 차이는 무엇일까? 아마 일상생활에서 스스로 생각해본 적이 거의 없는 주제일 것 같다.
존재자(ens)는 삼색볼펜, 옆집 누렁이, 저기 돌멩이와 같이 존재하는 모든 개별 사물을 지칭한다. 
그렇다면 존재(Being, esse)는 무엇을 의미할까? 
존재는 "모든 존재자에게 공통되는 "존재함(is-ness)"을 나타낸다.(p,274)". 
존재란 저기 존재자를 존재자로 만들어주는 무언가이다. 
따라서 존재라는 것 자체는 사물이 아니며, 개별 사물 또한 아니지만, 삼색볼펜과 옆집 누렁이가 떡하니 존재자로서 존재하는 만큼, 모든 존재자 내부에 특별하게 존재하는 무언가이다. 
그러므로 존재는 존재자보다 보다 본질적이다. 

아퀴나스에 따르면, 우리는 존재 개념을 파악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이성적 사유를 전개하지는 못한다. 
말하자면, 존재의 의미를 인식하기 위하여 존재들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무언가를 통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렇듯 존재는 인간 인식의 한계를 드러내준다.


현존과 본질, 범주

현존(existentia)은 어떤 사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본질(essentia)은 어떤 사물에 대해서 우리가 한계를 지어서 규정할 수 있는 것, 혹은 정의내릴 수 있는 무언가를 의미한다. 
우리는 주로 직관에 의존해 현존을 파악하지만,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성에 의존해야 한다. 
아퀴나스는 예를 들어, 삼색볼펜이 현존한다는 사실, 즉 삼색볼펜이 존재한다는 것을 더 설명하고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사물들이 존재하는 방식을 보고 우리는 그 사물의 본질에 대해서 정의내릴 수 있다. 
예를 들어, 삼색볼펜은 길쭉하다(물론 상대적이지만). 
하지만 아퀴나스는 몇몇 정의들이 모든 존재자에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그것을 범주라고 명명하였다. 범주의 예는 질, 양, 시간, 공간 등이다.


악투스와 포텐티아, 4원인

악투스와 포텐티아는, 그것을 부르는 명칭이 바뀐 것일 뿐 아리스토텔레스의 현실태(actus)와 잠재태(potentia)개념과 상당히 유사하다.
또한, 아퀴나스는 질료와 형상, 작용과 목적에 대해서 이야기한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인설도 수용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비슷한 부분은 세세하게 다루지 않을 것이다.

다만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한 모든 변화의 최종 목적(telos)이자 '부동의 원동자'인 제1원인은, 아퀴나스 철학에서 기독교의 인격신으로 대체되었다. 
물론 순수 현실태인 신은 위계구조의 최상에 위치하며, 최하단에는 순수 잠재태가 위치한다.
그 사이에는 무기물과 동식물, 인간이 존재한다. 
인간은 최상의 물질적 존재이다.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구성되어있다. 
하지만 아퀴나스는 아우구스티누스와는 달리, 인간의 육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지는 않았다. 
말하자면, 육체를 그저 영혼의 껍데기나 허물로 치부하지 않았다.
인간 영혼은 2가지로 구분되는 기능을 갖는다. 
하나는 인식이요, 인식으로 무엇이 좋은 것인지를 파악한다. 
다른 하나는 의지요, 인식으로 정해진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동력이 의지이다.


인식론

아퀴나스의 인식론은 그의 철학 전반에 자리잡고 있는데, 이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 상당 부분 계승된 모습이다.
어떤 사물에 대한 지식은 감각 경험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우리는 현상들의 감각적 인상으로부터, 그들 사이에 공통되는 특징을 인식해 그것을 개념화하고 지식으로 만들 수 있다.
아퀴나스는 온건한 실재론자였다.
감각 경험으로부터 인간의 인식이 시작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개별 사물들이 개념들보다 높은 지위를 차지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도출한 개념들이 순수한 추상으로서,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하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신은 만물의 창조자인 동시에 인간 인식의 창조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감각 능력은 우리를 둘러싼 감각 가능한 우주 만물을 인식할 수 있도록 창조되었다. 
그리고 우리의 인식능력은 우리를 둘러싼 보편적 형상들을 인식할 수 있도록 창조되었다(p.282)."

아리스토텔레스와 마찬가지로, 아퀴나스 또한 사물은 형상과 질료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질료는 개별화의 원리로, 사물은 질료를 갖음으로써 공간상 상이한 위치를 점하게 된다. 
또한 우리는 형상을 통해서 사물을 인식한다. 
형상은 사물의 구조, 외관, 특징 쯤으로 이해하면 된다. 
예를 들어서, 바늘 두 개는 같은 형상을 갖지만 서로 동일한 것은 아니다.

이론적 학문들

아퀴나스는 인간이 지식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사물의 어떤 측면들을 사상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즉, 지식은 그 대상의 어떤 측면을 무시(추상)할때 획득된다.
자연철학에서, 우리는 개별화시켜준다는 의미에서의 질료를 추상한다. 
자연철학을 할 때에, 우리는 바늘, 나무 의자와 같은 구체적인 사물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철학의 대상은 바늘을 바늘이게끔 만들어주는, 그 사물의 형상(본질)이다. 
쇠파이프와 바늘을 구분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가지는 본질에 대해서 탐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개별화로서의 질료는 추상되지만, 감각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서의 질료는 추상되지 않는다.
수학에서, 우리는 개별화로서의 질료와 더불어 감각 경험을 가능케 하는 질료 개념 역시 추상한다. 
수학은 사물의 양적 속성을 비롯하여 측정 가능한 속성과 구조에 관심이 있다.
형이상학에서, 우리는 수학에서 언급한 추상에 더불어 양적 속성까지도 추상한다. 
따라서 형이상학은 추상 수준이 가장 높은 학문분야이다. 형이상학의 관심사는 사물의 존재한다는 것 자체와 범주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