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사/중세

아우구스티누스(354~430 CE) [1]

bianor 2023. 7. 8. 16:58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는 기독교도인 어머니를 두었으나, 청년 시절 방탄한 생활을 즐겼다.
일례로, 그는 18세에 이미 아기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속세의 쾌락과 향락에 빠져 있던 청년은 훗날 절실히 회개하고 위대한 신학자가 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이 존재한다면, 이 세상에는 왜 악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문제 등에 관심이 있었다. 
초기에 그는 당시에 유행하던 종교적 운동인 마니교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그는 마니교 교리에서 만족하지 못했고, 한때 회의주의로 기울기도 하였다.
이후 아우구스티누스는 신플라톤주의를 접하게 되었는데, 그는 여기서 보다 흡족한 대안을 얻어낸 것 같다.
신플라톤주의는 인간의 이성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제대로 알면 올바른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의 경우 그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 곧이곧대로 사는 것이 쉽지 않음을 느꼈다.
30세가 되었을 즈음에 그는 기독교로 개종하게 된다.
이후 아우구스티누스는 주교가 되었으며, 남은 생을 영적인 과업에 바치게 된다.

이미지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Augustine_of_Hippo. https://www.cutout.pro/에서 quality 개선.


아우구스티누스가 저술한 책들 중 유명한 4권은 다음과 같다. 
1. 「아카데미아파 반박론Contra Academicos」. 이 책에서 저자는 과거 회의주의자였던 자신을 되돌아보고 회의주의를 반박한다.

2. 「자유의지론De libero arbitrio」. 이 책에서 저자는 자유의지와 악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3. 「고백록Confessiones」. 아마 우리에게는 고백록이 가장 유명할 것 같다. 이 책은 어린시절부터 성인까지 저자의 경험을 총 망라하며 인간의 육체적 욕망과 영적 탐구, 신앙과 의문에 대한 회고와 고백으로 이루어져있다.

4. 「신국론De civitate Dei」. 이 책에서 저자는 지상의 나라와 신의 나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철학과 신학

우선 아우구스티누스가 이야기한 내성(內省, introspection)개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가자.
내성이란 개인의 내부적인 경험, 생각, 감정 따위를 관찰하고 인지하는 과정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말하자면, 내면에의 성찰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회의주의를 반박하며 우리는 내성을 신뢰할 수 있으며 내성을 통해 파악한 내적 존재는 감각경험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내적 존재는 끊임없는 의지와 충동-예를 들어 죄악에의 유혹과 구원에의 갈망의 전쟁터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스토아학파가 주장하듯 이러한 내면을 스스로 다스려야한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신의 은총과 초인간적 조력을 필요로 한다.

신플라톤주의의 견해에 따라서, 아우구스티누스 역시 인간의 영혼과 육체를 차등적으로 바라보고자 했다.
"영혼은 인간에 존재하는 신적인 것이고, 육체는 죄악의 뿌리이므로 우리는 가능한 한 우리 스스로를 육체로부터 해방시키고 내적 존재인 영혼에 집중함으로써 우주 내 존재의 영적 원천인 신에 다가서야 한다는 것이다.(p.244)"


아우구스티누스는 우리의 내면이 갈등 상태에 놓여 있듯이, 우리의 역사 또한 천상의 나라(civitas Dei)와 지상의 나라(civitas terrena) 간의 투쟁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를 정치의 일환에서 주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늘날 주류의 해석은, 아우구스티누스가 교회를 하느님의 나라로, 로마제국을 지상의 나라로 상정한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일단 이 해석을 따르기로 하자.


선과 악은 역사적 투쟁을 계속한다. 
한편,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인간은 본성상 타락했다. 
이것은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의 명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은 죄, 즉 원죄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악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강력한 지상의 국가가 필요하다. 
죄악의 출현과 더불어 인간은 조직화되고 강력한 국가와 법체계가 필요하게 되었다. 
권력자들과 지배자들은 신이 임명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인민은 이 지배자에게 복종해야만 한다.


악한 나라, 즉 국가가 사람들을 통제한다면 선한 나라, 즉 교회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교회는 사람들에게 종교적 가르침을 전하고 윤리와 도덕을 교육한다. 
또한, 교회는 세속 국가를 감시하며 필요하다면, 태클을 거는 기능도 담당한다. 


회의주의 논박

아우구스티누스는 우리가 확실한 지식을 얻을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회의주의자들을 반박하였다. 
여기서는 책의 내용을 참고하여 확실한 지식의 네 영역을 살펴보자.

1. 우리는 우리의 감각이 불확실하고, 우리가 경험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의심하더라도 지금 의심하고 있는 나 자신을 의심할 수는 없다. 
말하자면, "내가 의심하기 때문에 바로 의심하는 나는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p.248)" 
이것은 반박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지식이다. 
따라서 회의주의는 반박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이러한 사유는 유명한 데카르트의 사유를 떠올리게 한다.

2. 위 내용을 확장하면 같은 논리로 여러 통찰을 얻을 수 있다. 
말하자면, "내가 (내가 존재하고, 내가 사랑하고, 내가 의심한는) 이 모든 것에 대해 안다면 나는 내가 확실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완전히 확실하게 주장할 수 있다.(p.249)" 
이것이 본 포스팅의 서두에 언급하였던 내성內省이다. 
우리는 내적 상태에 대한 철저한 성찰을 통해 확실한 지식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내성에의 진술이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것이 참임을 알 수 있는가?
또, 우리의 기억에 오류가 있을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한편, 그 진술의 언어적 표현이 올바른 대상을 가리킨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는가?


3. 아우구스티누스는 또한 수학적 진술은, 감각이 아닌 이성에 기반하기에 필연적인 진리라고 생각하였다.

4. 아우구스티누스는 몇몇 논리원칙들은 의심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예를 들어, 회의주의자들 또한 모순율에 따라서 그들의 주장을 제기한다.
물론 엄밀히 파고들자면 문제가 복잡해지겠지만, 적어도 아우구스티누스는 회의주의자들을 논박하는 데에 이를 사용하였다.

우리는 회의주의를 반박하는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신플라톤주의적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감각과 외부의 물질적 세계보다 개인의 영혼의 성찰에서 비롯되는 내적 삶, 논리적 형식, 수학적 진리 등이 더욱 우월하며 고차원적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논증은 곧 최고의 존재인 신에 대한 믿음을 뒷받침하는 논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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