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사/근대

잠바티스타 비코(1668~1744 CE)

bianor 2023. 8. 23. 16:52

(추후 수정 예정)

잠바티스타 비코(Giambattista Vico)는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초반까지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역사철학자로, 역사, 언어, 사회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기여하였다.
그의 저서 <새로운 과학의 원리(Principi di scienza nuova, 1725)>는 비코 살아생전에는 주목받지 못하였으며 당대의 학문적 조류와도 불일치했다.
하지만 비코의 생각은 19세기에 재조명되며 특히 새로운 역사의식의 성립에 큰 기여를 했다.


비코에 따르면, 우리는 오직 우리가 창조한 것에 대해서만 명확하고 확실한 지식을 가질 수 있다.
그 대상은 바로 사회와 제도 및 법령 등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들, 역사, 인문학 등이다.
반면, 자연은 신에 의해서 창조된 것이므로, 오직 신만이 자연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
자연의 외부적 관찰자로서 인간은 자연적 과정을 기술하고 실험 결과 등을 예측해볼수는 있지만, 자연이 왜 그렇게 현상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비코는 다음과 같은 예시를 든다.
기하학의 경우, 기하학적 추론의 출발인 선과 도형은 인간이 창조한 것이기에 증명이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적 물체들을 창조한 장본인도 아닐뿐더러, 그것이 어떻게 구성되어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현상의 원인들을 단지 추정해볼 수 있을 뿐이다.

"시엔차 누오바(Scienza nuova, 새로운 과학)은 데카르트주의에 대한 하나의 교정을 의미한다.(p.432)"
앞서 살펴보았듯, 데카르트는 인문학 연구가 우리에게 확실한 지식을 안겨줄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더 나아가 데카르트는 자연과학과 견주어 인문학의 위상을 평가절하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이에 대한 비코의 입장은 정반대로, 우리는 인간 스스로 탐구 대상을 창출한 인문학과 사회과학 등의 학문에서만 확실한 지식을 가질 수 있다.
더 넓게는 기하학과 역사학도 여기에 포함된다.


비코는 사회와 문화, 역사를 인간 정신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사회와 문화는 인간의 의도, 욕망, 동기 등이 복합적으로 표출된 양상이라는 것이다.
인문학에서의 인식 대상은 주체 그 자체로, 인간들과 그들이 창조한 사회이다.

이를 바탕으로 비코는 그의 역사의식을 전개한다.
비코가 보기에, 당시 역사가들은 과거에 벌어진 역사적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때 역사의식이 결여되어있다.
말하자면, 그들은 현시대에 통용되는 문화와 관습, 상식을 과거 시대에 끌어들이거나 마치 그것이 존재했던 것처럼 이야기하는 오류를 범한다.
그러나 인간의 정신적, 지적 능력은 시대마다 다르며 각 시대의 지식이 다른 시대에도 적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따라서 비코가 생각하기에 홉스와 그로티우스와 같이 자연권, 자연법 사상이 초기 인류에게 적용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섣부른 일이다.


우리가 과거의 사람들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싶다면, 우선 그들의 언어를 연구해야 한다.
따라서 과거의 언어를 연구하는 문헌학(philology)는 중요하다.

또한 우리는 그들이 처했던 상황과 세상을 바라보았던 시각을 상상해야만 하는데, 이러한 감정이입을 통해서 과거의 세계를 재구성해야만 한다.
상상력, 즉 "판타지아(fantasia)는 세계를 범주화하는 상이한 방식을 상상하는 능력이다.(p.434)"
상상력을 통해 도달한 통찰은 통상적인 지식과는 다른 성격을 갖는다.

이것은 개념들 간의 관계에서 얻어낸 지식도 아니며, 어떠한 사실에 기초한 지식의 성격과도 다르다.
하지만 비코는 현재나 과거나 인간은 공통된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면으로부터 그들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인간의 행위가 내부의 의도, 욕망, 이유의 표현으로 해석된다는 점은 공통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비코는 고대 그리스의 역사와 발전 과정을 다음과 같은 비유적인 접근을 통해서 설명한다.

첫 번째 시대는 '신들의 시대'이다.
이 시기의 사람들은 자연이 목적론적이라고 생각하였으며, 따라서 자연현상에 대해 경외심을 가지고 있었다.
전통과 관습은 신에 의해 정해진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며, 올바름과 진리도 신탁에 의해서 좌우되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신화는 과거의 사람들이 그들만의 개념 틀을 가지고 경험을 조직해내었다는 증거이다.
단지 신화는 미신과 거짓말, 허풍과 동일시할 것이 아니다. 
이들의 사유방식은 유비적이고 연상적이었는데, 일례로 우리는 지금까지도 '하구(河口, 강의 입)'나, (폭풍는 눈을 갖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폭풍의 눈'이라는 표현을 쓴다.


두 번째 시기는 '영웅들의 시대'이다.
이 시대에는 권력을 지닌 가부장들이 가족과 집단의 지도자가 되었으며, 약한 개인들은 보호를 대가로 노예가 되었다.
비코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가 노래의 형식으로 지어져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따라서 이 시대의 지혜와 지식은 비유적이었으며 시적이었다.
사회적 분화와 함께, 노예들은 스스로의 힘을 깨닫고 그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비코에 따르면 노예와 노예의 주인 간의 갈등에서 귀족과 왕정이 탄생하였다.
하지만 점차 인간들 간의 동등성이 부각되었으며, 국가는 귀족정에서 민주정으로 변모한다.

세 번째 시기는 '인간들의 시대'이다.
이 시기는 메타포의 시대가 아닌 산문의 시대이다.
인간은 추상과 보편적 개념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철학적 지혜가 시적 지혜를 대치하고 정치, 법률 또한 함께 발전하였다.
비코에 따르면 이 시기에 등장한 개인들은 나름의 법과 제도를 가지고 있었으며, 사회 계약을 통해서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합의한다.


비코는 모든 민족은 스스로의 갈등과 전쟁을 통해서 위와 같은 주기적 패턴(코르지 에 리코르지, corsi e ricorsi)를 거친다고 생각하였다. 
"비코가 이 역사적 과정을 "동일한 것의 영원한 반복"으로 해석했는지, 아니면 변증법적인 나선형의 패턴으로 해석했는지는 불명확하다.(p.439)"
비코는 한 사회의 여러 제도들과 관습들, 대표적인 인간상과 국가 형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면 우리는 모종의 통일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허지만 모든 문화와 시대는 특별하고 유일하며, 특정한 생활 방식과 시대상이 더 좋거나 나쁘다는 판단은 내릴 수 없다.
예술에 절대적인 기준은 없으며 우리는 결코 <일리아스>와 같은 작품을 다시 써내려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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